웨스트민스터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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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19세기 말 가톨릭 부활 이후 건축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로마 가톨릭 대성당이다. 비잔틴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1895년 존 프란시스 벤틀리의 설계로 공사가 시작되어 1903년에 문을 열었다. 대성당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한 피에 헌정되었으며, 내부에는 모자이크 장식, 다양한 경당, 그리고 웅장한 구조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뛰어난 합창 전통을 자랑하며, 1896년부터 발행된 월간 잡지 ''Oremus''를 포함한 다양한 부속 시설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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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대성당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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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정식 명칭 |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가장 귀한 피 대성당 |
원어 명칭 | Metropolitan Cathedral of the Most Precious Blood of Our Lord Jesus Christ |
종류 | 대성당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
위치 | 잉글랜드 런던 웨스트민스터 시 프랜시스 스트리트, SW1 |
좌표 | 51°29′36″N 0°08′23″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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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
건축가 | 존 프랜시스 벤틀리 |
건축 양식 | 네오비잔틴 건축 |
착공 | 1895년 |
완공 | 1903년 |
봉헌 | 1910년 |
길이 | 110m |
너비 | 47m |
탑 높이 | 87m (십자가 포함) |
교구 | |
관구 | 웨스트민스터 |
교구 | 웨스트민스터 |
교구 시작 | 1884년 |
대주교 | 빈센트 니콜스 |
주임 사제 | 스와보미르 위톤 |
오르간 연주자 | 사이먼 존슨, 피터 스티븐스 |
문화유산 지정 | |
지정 종류 | 영국 1급 지정 건축물 |
지정일 | 1987년 12월 1일, 1994년 2월 15일 수정 |
지정 번호 | 1066500 |
기타 |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2. 역사
19세기 말,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세는 가톨릭 해방 이후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다시 부활하였다.[6] 1850년부터 웨스트민스터의 초대 대주교였던 위즈먼 추기경(1865년 사망)을 기리기 위해 새로운 대성당을 짓기위한 기금이 모금되었다.[6] 1884년, 위즈먼의 후임자인 매닝 추기경은 이전 토힐 필드 브리드웰 감옥이 있던 부지를 매입하였다.[6]
1867년(헨리 클루턴)과 1892년(바론 폰 헤르스텔)의 두 차례의 건축 시도가 실패한 후,[6] 1895년 매닝의 후임이자 세 번째 대주교인 본 추기경의 지휘 아래 존 프란시스 벤틀리를 건축가로 하여 비잔틴 건축 양식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6] 1895년 6월 29일, 본 추기경의 정초식 축복이 거행되었으며, 로그 추기경이 저녁 미사를 집전하고, 베네딕토회, 프란체스코회 등 여러 수도회 행렬이 부지 주위를 돌았다.[8]
대성당은 벤틀리의 사망 1년 후인 1903년에 문을 열었으며,[6][9] 최초의 공개 전례 중 하나는 1903년 6월 19일에 사망한 본 추기경의 진혼 미사였다.[9] 건물 기금 부채가 청산된 후, 1910년 6월 28일에 봉헌식이 거행되었다.[10] 가톨릭 교회의 법에 따라, 부채가 없는 경우에만 예배 장소를 봉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10]
1895년에 대성당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한 피에 헌정되었다.[11] 추가적인 수호성인은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 그의 양아버지인 성 요셉, 그의 대리자인 성 베드로이다.[11] 대성당은 또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모든 영국 성인, 성 파트리치오와 모든 아일랜드 성인 등 수많은 부수적인 수호성인을 가지고 있다.[11] 대성당 봉헌 축일은 매년 7월 1일에 기념된다.[11]
1977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실버 쥬빌리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대성당을 방문했다. 1982년 5월 2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영국 방문 첫날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1995년 성 안드레아 축일에는 바실 추기경 흄의 초청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시 대성당을 방문하여 성가 만과에 참석했다. 2010년 9월 18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영국 방문 중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2011년 1월, 대성당은 우리 성모 마리아 개인 관구로의 세 명의 전직 성공회 주교 수용과 서품식이 열린 장소였다.[12] 2012년, 대성당은 BBC Four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가톨릭교도''의 두 에피소드 촬영지였다. 2021년 5월,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보리스 존슨 총리와 캐리 시몬즈가 대성당에서 결혼했다.[13]
2. 1. 건립 배경
19세기 말,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계층은 가톨릭 해방 이후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부활하였다.[6] 1850년부터 웨스트민스터의 초대 대주교였던 위즈먼 추기경(1865년 사망)을 기리기 위해 새로운 대성당을 위한 기금이 모금되었다.[6] 1884년, 위즈먼의 후임자인 매닝 추기경은 이전 토힐 필드 브리드웰 감옥이 있던 부지를 매입하였다.[6]1867년(헨리 클루턴)과 1892년(바론 폰 헤르스텔)의 두 차례의 건축 시도가 실패한 후,[6] 1895년 매닝의 후임이자 세 번째 대주교인 본 추기경의 지휘 아래 존 프란시스 벤틀리를 건축가로 하여 비잔틴 건축 양식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6] 1895년 6월 29일, 본 추기경의 정초식 축복이 거행되었으며, 로그 추기경이 저녁 미사를 집전하고, 베네딕토회, 프란체스코회 등 여러 수도회 행렬이 부지 주위를 돌았다.[8]
대성당은 벤틀리의 사망 1년 후인 1903년에 문을 열었으며,[6][9] 최초의 공개 전례 중 하나는 1903년 6월 19일에 사망한 본 추기경의 진혼 미사였다.[9] 건물 기금 부채가 청산된 후, 1910년 6월 28일에 봉헌식이 거행되었다.[10] 가톨릭 교회의 법에 따라, 부채가 없는 경우에만 예배 장소를 봉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10]
1895년에 대성당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한 피에 헌정되었다.[11] 추가적인 수호성인은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 그의 양아버지인 성 요셉, 그의 대리자인 성 베드로이다.[11] 대성당은 또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모든 영국 성인, 성 파트리치오와 모든 아일랜드 성인 등 수많은 부수적인 수호성인을 가지고 있다.[11] 대성당 봉헌 축일은 매년 7월 1일에 기념된다.[11]
1977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실버 쥬빌리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대성당을 방문했다. 1982년 5월 2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영국 방문 첫날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1995년 성 안드레아 축일에는 바실 추기경 흄의 초청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시 대성당을 방문하여 성가 만과에 참석했다. 2010년 9월 18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영국 방문 중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2011년 1월, 대성당은 우리 성모 마리아 개인 관구로의 세 명의 전직 성공회 주교 수용과 서품식이 열린 장소였다.[12] 2012년, 대성당은 BBC Four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가톨릭교도''의 두 에피소드 촬영지였다. 2021년 5월,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보리스 존슨 총리와 캐리 시몬즈가 대성당에서 결혼했다.[13]
2. 2. 건립 과정
19세기 말,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계층은 가톨릭 해방 이후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부활되었으며,[6] 1850년부터 웨스트민스터의 초대 대주교였던 위즈먼 추기경(1865년 사망)을 기리기 위해 새로운 대성당을 위한 기금이 모금되었다.[6] 1884년, 위즈먼의 후임자인 매닝 추기경은 이전 토힐 필드 브리드웰 감옥 부지를 매입하였다.[6]1867년(건축가 헨리 클루턴)과 1892년(건축가 바론 폰 헤르스텔)에 두 번의 건설 시도가 실패한 후,[6] 1895년 매닝의 후임인 본 추기경의 지휘 아래 존 프란시스 벤틀리를 건축가로 하여 비잔틴 건축 양식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6] 1895년 6월 29일, 본 추기경의 정초식에는 로그 추기경을 비롯한 성직자들과 노포크 공작, 액턴 경 등 저명한 인사들이 참석했다.[8]
대성당은 벤틀리의 사망 1년 후인 1903년에 문을 열었다.[6] 최초의 공개 전례 중 하나는 1903년 6월 19일에 사망한 본 추기경의 진혼 미사였다.[9] 건물 기금 부채가 청산된 후, 1910년 6월 28일에 봉헌식이 거행되었다.[10]
1977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실버 쥬빌리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대성당을 방문했다. 1982년 5월 2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영국 방문 첫날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1995년 성 안드레아 축일에는 바실 추기경 흄의 초청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다시 대성당을 방문하여 성가 만과에 참석했다. 2010년 9월 18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영국 방문 중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2011년 1월, 대성당은 우리 성모 마리아 개인 관구로의 세 명의 전직 성공회 주교 수용과 서품식이 열린 장소였다.[12] 2012년에는 BBC Four 다큐멘터리 ''가톨릭교도''의 촬영 장소로 사용되었다. 2021년 5월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공 미사가 금지된 상황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와 캐리 시몬즈가 대성당에서 결혼했다.[13]
2. 3. 현대
19세기 말,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계층은 가톨릭 해방으로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부활되었으며,[6] 1850년부터 웨스트민스터의 초대 대주교였던 위즈먼 추기경(1865년 사망)을 기리기 위해 새로운 대성당을 위한 기금이 모금되었다.[6] 그 부지는 위즈먼의 후임자인 매닝 추기경에 의해 1884년에 매입되었으며, 이전에는 토힐 필드 브리드웰 감옥이 있었다.[6]두 번의 실패 후, 1895년에 매닝의 후임이자 세 번째 대주교인 본 추기경의 지휘 아래 존 프란시스 벤틀리를 건축가로 하여 비잔틴 건축의 영향을 크게 받은 스타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6] 대성당은 벤틀리의 사망 1년 후인 1903년에 문을 열었다.[6] 대성당에서 거행된 최초의 공개 전례 중 하나는 1903년 6월 19일에 사망한 본 추기경의 진혼 미사였다.[9] 건물 기금의 부채가 청산되었을 때, 봉헌식은 1910년 6월 28일에 거행되었다.[10] 가톨릭 교회의 법에 따라, 부채가 없는 경우에만 예배 장소를 봉헌할 수 있었다.
내부 장식은 봉헌 당시에는 거의 시작되지 않았는데, 비잔틴 교회에서는 건축에 필수적인 부분이라기보다는 덧붙여지는 방식으로 장식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풍부한 대리석 장식과 아름답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모자이크로 유명한 내부를 가진 건축 보석이다.
1895년에 대성당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한 피에 헌정되었다. 추가적인 수호성인은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 그의 양아버지인 성 요셉, 그의 대리자인 성 베드로이다. 대성당은 또한 수많은 부수적인 수호성인을 가지고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모든 영국 성인, 성 파트리치오와 모든 아일랜드 성인.[11] 대성당 봉헌 축일은 매년 7월 1일에 기념된다.[11]
1977년, 실버 쥬빌리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꽃 전시회를 보기 위해 대성당을 방문했다. 1982년 5월 28일, 영국에 대한 6일간의 사목 방문의 첫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1995년 성 안드레아 축일(11월 30일), 바실 추기경 흄의 초청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은 다시 대성당을 방문했지만 이번에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 전례에 참여하여 성가 만과에 참석했다.
2010년 9월 18일, 영국에 대한 4일간의 국빈 방문의 셋째 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2011년 1월, 대성당은 새롭게 결성된 우리 성모 마리아 개인 관구로의 세 명의 전직 성공회 주교에 대한 수용과 그 이후의 서품식이 열린 장소였다.[12] 2012년, 대성당은 BBC Four의 3부작 다큐멘터리 시리즈 ''가톨릭교도''의 두 개의 에피소드의 개최지였다.[13]
3. 건축
비잔틴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대시계탑인 성 에드워드 타워(높이 약 90m)와 정면의 아치, 기둥의 조화가 눈에 띈다.
대성당 내부의 중앙 홀(신자들이 앉는 곳)은 잉글랜드 교회 중 가장 넓으며, 제단은 중앙 홀보다 1.5m 위에 위치하여 모든 좌석에서 모자이크와 조명이 켜진 대리석 장식 덮개를 볼 수 있다. 제단 위 아치에 걸린 예수 그리스도의 대형 십자가는 길이가 10m에 달하며, 앞면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뒷면에는 슬퍼하는 성모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모자이크로 장식된 대리석 대주교좌는 로마의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의 주교좌를 본떠 만들었다.
대성당 장식의 중심은 주 제단 위에 있는 발다키노이다. 이 구조물은 폭 9.5m, 높이 11.5m로, 흰색 대리석 윗부분은 다채로운 대리석, 청금석, 진주, 금으로 상감되어 있다. 베로나산 노란색 대리석 기둥 8개가 주 제단 위의 발다키노를, 노르웨이산 흰색 및 분홍색 기둥이 오르간 갤러리를 지탱한다.
발다키노 뒤에는 지하 묘지가 성소 바닥 위로 솟아 있으며, 후진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연결된다. 지하 묘지의 곡선 벽은 녹색 카리스트란 대리석 판으로 덮여 있다. 지하 묘지에는 초대 웨스트민스터 대주교인 위즈먼 추기경과 매닝 추기경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캔터베리 성 에드먼드의 제단과 유물은 방 남쪽의 움푹 들어간 곳에 있으며, 북쪽 익랑에서 들어가는 캔터베리 성 토마스의 작은 예배당은 Vaughan 추기경을 위한 기도실로 사용된다. 성소 아치에서 매달린 거대한 비잔틴 양식의 십자가가 본당을 지배한다.
성소 북쪽의 성체 축성 경당과 남쪽의 성모 경당은 트랜셉트에서 들어갈 수 있으며, 너비는 6.7m이다. 성체 축성 경당의 제대 위에는 작은 발다키노가 있고, 경당은 청동 격자 및 문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모 경당의 벽은 대리석으로 덮여 있으며, 제대 후면 벽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자이크이다. 경당의 조개 껍질에는 구약성서의 예언자 다니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의 모자이크가 있다. 복되신 성모에게 헌정된 경당은 완전히 개방되어 있으며, 웨드 남작 부인이 자금을 지원했다.
중앙 굴의 통로에서 들어갈 수 있는 경당은 너비가 6.7m이며, 배럴 볼트로 지붕을 덮었다. 세례반 옆에 있는 그레고리오 성인과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경당은 대리석으로 된 열린 스크린으로 분리되어 있다. 교각의 대리석 안감은 볼트의 스프링 레벨까지 올라가며, 측벽의 창문 아래에서 대리석 다도는 이 높이의 절반 정도까지 올라간다. 처마 장식에서 모자이크 장식이 벽과 볼트에서 시작된다. 각 경당은 고유한 예술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성 그레고리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헌정된 경당은 생생한 모자이크가 있는 반면, 거룩한 영혼의 경당은 은색 배경에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장식으로 차분한 스타일을 사용한다.
외곽 통로를 따라 십자가의 길이 있으며, 조각가 에릭 길이 제작했다.
3. 1. 건축 양식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네오 비잔틴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내부 면적(5,017m²) 기준 세계에서 50번째로 큰 교회이다.[14] 최대 2,0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내부 면적 기준으로는 세계에서 38번째로 큰 가톨릭 교회이다. 벽돌과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사용하였으며, 외부에는 붉은 벽돌과 흰색 석재 띠를 조화롭게 배치하였다.[15] 켄트주 페이버샴과 브래크넬에서 수작업으로 성형된 벽돌이 사용되었다.[15]건물 전체는 넓고 방해받지 않는 내부를 주요 특징으로 하며, 너비 18m, 아치에서 성소 계단까지 길이 70m의 공간이 돔형 볼트로 덮여 있다.[14] 돔을 지지하는 주요 기둥과 횡아치는 내부를 세 개의 만(bay)으로 나누며, 각 만은 약 395m²이다. 돔은 바닥에서 27m 높이에 있는 아치 위에 놓여 있으며, 전체 내부 높이는 34m이다. 얕은 오목형의 펜던티브 유형의 돔을 선택하여 무게와 압력을 최소화했다.
내부 설계는 대부분의 고딕 대성당에서 볼 수 있는 지지대 시스템을 채택했지만,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는 내부에만 존재한다. 성소는 비잔틴 양식의 건설 시스템을 따르며, 모든 면으로 열리는 확장은 돔의 왕관이 지지대와 독립적으로 보이게 한다. 동쪽 종단은 북부 이탈리아의 로마네스크 건축 또는 롬바르드 건축 양식을 연상시키며, 성소로 열리는 지하 예배당은 밀라노의 산탄브로조 성당을 면밀히 따른다.
건축가 존 프랜시스 벤트리(John Francis Bentley)가 설계한 대성당은 비잔틴 건축 양식으로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높이 약 90m의 대시계탑, 성 에드워드 타워와 정면의 아치, 기둥의 조화가 눈에 띈다. 잉글랜드 교회 중 가장 넓은 중앙 홀(신자들이 앉는 곳)을 가지고 있으며, 제단은 중앙 홀보다 1.5m 위에 위치하여 모든 좌석에서 모자이크와 조명이 켜진 대리석 장식 덮개, 그 아래의 제단을 볼 수 있다. 제단 위 아치에 걸린 길이 10m의 예수 그리스도 대형 십자가는 앞면에 그리스도의 모습, 뒷면에 슬퍼하는 성모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대리석 대주교좌는 로마의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의 주교좌를 본떠 만들었다.
3. 2. 주요 구조물
비잔틴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대시계탑인 성 에드워드 타워(높이 약 90m)와 정면의 아치, 기둥의 조화가 눈에 띈다.
대성당 내부의 중앙 홀(신자들이 앉는 곳)은 잉글랜드 교회 중 가장 넓으며, 제단은 중앙 홀보다 1.5m 위에 위치하여 모든 좌석에서 모자이크와 조명이 켜진 대리석 장식 덮개를 볼 수 있다. 제단 위 아치에 걸린 예수 그리스도의 대형 십자가는 길이가 10m에 달하며, 앞면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뒷면에는 슬퍼하는 성모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2] 모자이크로 장식된 대리석 대주교좌는 로마의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의 주교좌를 본떠 만들었다.
대성당 장식의 중심은 주 제단 위에 있는 발다키노이다. 이 구조물은 폭 9.5m, 높이 11.5m로, 흰색 대리석 윗부분은 다채로운 대리석, 청금석, 진주, 금으로 상감되어 있다. 베로나산 노란색 대리석 기둥 8개가 주 제단 위의 발다키노를, 노르웨이산 흰색 및 분홍색 기둥이 오르간 갤러리를 지탱한다.
발다키노 뒤에는 지하 묘지가 성소 바닥 위로 솟아 있으며, 후진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연결된다. 지하 묘지의 곡선 벽은 녹색 카리스트란 대리석 판으로 덮여 있다. 지하 묘지에는 초대 웨스트민스터 대주교인 위즈먼 추기경과 매닝 추기경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캔터베리 성 에드먼드의 제단과 유물은 방 남쪽의 움푹 들어간 곳에 있으며, 북쪽 익랑에서 들어가는 캔터베리 성 토마스의 작은 예배당은 Vaughan 추기경을 위한 기도실로 사용된다. 성소 아치에서 매달린 거대한 비잔틴 양식의 십자가가 본당을 지배한다.
성소 북쪽의 성체 축성 경당과 남쪽의 성모 경당은 트랜셉트에서 들어갈 수 있으며, 너비는 6.7m이다. 성체 축성 경당의 제대 위에는 작은 발다키노가 있고, 경당은 청동 격자 및 문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모 경당의 벽은 대리석으로 덮여 있으며, 제대 후면 벽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자이크이다. 경당의 조개 껍질에는 구약성서의 예언자 다니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의 모자이크가 있다. 복되신 성모에게 헌정된 경당은 완전히 개방되어 있으며, 웨드 남작 부인이 자금을 지원했다.[16]
중앙 굴의 통로에서 들어갈 수 있는 경당은 너비가 6.7m이며, 배럴 볼트로 지붕을 덮었다. 세례반 옆에 있는 그레고리오 성인과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경당은 대리석으로 된 열린 스크린으로 분리되어 있다. 교각의 대리석 안감은 볼트의 스프링 레벨까지 올라가며, 측벽의 창문 아래에서 대리석 다도는 이 높이의 절반 정도까지 올라간다. 처마 장식에서 모자이크 장식이 벽과 볼트에서 시작된다. 각 경당은 고유한 예술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성 그레고리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헌정된 경당은 생생한 모자이크가 있는 반면, 거룩한 영혼의 경당은 은색 배경에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장식으로 차분한 스타일을 사용한다.[17]
외곽 통로를 따라 십자가의 길이 있으며, 조각가 에릭 길이 제작했다.[2]
4. 모자이크
대성당 건축가 존 벤틀리가 사망했을 때, 대성당에는 완성된 모자이크가 없었고 벤틀리는 스케치나 디자인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17] 결과적으로 모자이크의 주제와 스타일은 기증자뿐만 아니라 대성당 위원회의 감독을 받는 디자이너의 영향을 받았다. 벤틀리의 영향은 성스러운 영혼을 위한 예배당에서만 볼 수 있다.[17] 벤틀리의 실제 디자인이 없었기 때문에, 모자이크가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17]
1912년부터 1916년까지 설치된 모자이크는 대부분 미술 공예 운동의 신봉자들이 제작했다. 귀부인 예배당의 모자이크는 거트루드 마틴에 의해 1912~1913년에 설치되었다. 이 작업은 그리스도 옥좌의 모자이크를 디자인한 애니 벨과 마샬의 감독을 받았다. 입구의 팀파눔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비잔틴 모자이크 기법으로, 천국의 열쇠를 든 성 베드로, 성모 마리아, 판토크라토르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백합을 든 아기 예수를 돌보는 성 요셉, 에드워드 참회왕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른손으로 축복을 내리고, 왼손에는 생명의 책을 들고 있다. 열린 책 페이지의 라틴어 비문은 "Ego sum ostium per me si quis introierit salvabitur"(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받으리라; 요한 복음서 10,9)이다.
제4대 부트 후작이 비용을 지불한 성 안드레아 예배당의 모자이크도 미술 공예 운동의 작품에 속한다.[18] 1930년부터 1935년까지 5년 동안 귀부인 예배당, 고해소 위 틈새, 성 베드로를 위한 지하 묘소, 성소 아치에 모자이크가 설치되었다.
1950년에는 리시외의 성 테레사를 묘사한 모자이크가 설치되었고, 1952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사망한 영국 육군 의료대의 사람들을 기리는 모자이크가 성 조지 예배당에 설치되었다. 1960년부터 1962년까지 복된 성사 예배당은 초기 기독교 양식으로 장식되었으며, 모자이크는 빛과 공간의 느낌을 주기 위해 주로 옅은 분홍색을 띠었다. 디자이너 보리스 안레프는 성찬 주제를 선택했다. 안레프는 성 바울 예배당(1964–1965)에 설치된 모자이크의 조언자이자 주요 스케치 예술가로 활동했다.[19] 이 모자이크는 바울의 삶, 개종, 몰타에서의 난파, 로마에서의 최종 처형을 묘사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까지 다음 모자이크는 북서쪽 입구 위에 설치되지 않았다. 이 모자이크는 "Porta sis ostium pacificum per eum qui se ostium appellavit, Jesus Christum"(이 문이 자신을 문이라고 부른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평화의 문이 되기를)라는 비문이다. 1999년에는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이 세잎 클로버와 사목 지팡이를 들고 뱀을 짓밟는 모자이크가 설치되었다. 2001년에는 성 알반의 모자이크가 설치되었다. 홉스는 성 가족의 모자이크(2003)와 성 요셉 예배당(2006)을 만들었다. 홉스는 또한 성 토마스 베켓을 기리는 예배당을 만들었다. 둥근 천장은 꽃, 덩굴손 및 원형 장식 디자인으로 장식되어 있다(2006). , 성 프란치스코 데 아시시와 파도바의 성 안토니우스를 묘사한 모자이크를 포함한 추가 모자이크가 설치될 계획이었다.[20]
내부의 중앙 홀은 잉글랜드 교회 중에서도 가장 넓이를 자랑하며, 제단은 중앙 홀보다 1.5m 위에 위치해 있어 모든 좌석에서 인상적인 모자이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제단 위의 아치에 걸린 예수 그리스도의 대형 십자가는 길이가 10m에 달한다. 십자가 앞면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뒷면에는 슬퍼하는 성모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모자이크로 장식된 대리석 대주교좌는 로마의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의 주교좌를 본떠 만들었다.
5. 음악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다른 영국 대성당들에 비해 역사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합창 전통을 자랑한다. 이는 대성당 설립자인 카디널 본과 초대 음악 감독인 리처드 런시먼 테리 경의 공동 비전 덕분이었다. 테리는 1년 동안 합창단을 준비시킨 후 첫 성가 봉사를 공개했다. 그는 재임 기간(1924년까지) 동안 영국 르네상스 시대의 라틴어 레퍼토리를 부활시키는 데 힘썼는데, 이 곡들은 대부분 종교 개혁 이후 불리지 않던 것들이었다. 찰스 빌리어스 스탠포드는 왕립 음악 대학 학생들을 대성당으로 보내 "1페니에 듣는 다성 음악"(버스 요금)을 듣게 하여 그들의 유산을 접하게 했다. 이 프로그램은 또한 소년들의 시창 능력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연마해야 했다.
합창단은 벤자민 브리튼, 랄프 본 윌리엄스와 같이 성공회 교회 음악에 기여한 것으로 더 잘 알려진 작곡가들로부터 많은 작품을 위촉받았다. 그러나 합창단은 그레고리오 성가와 르네상스 시대의 다성 음악 연주로 특히 유명하다.
다른 대부분의 영국 대성당과 달리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별도의 합창석이 없다. 대신 합창단은 주 제단 뒤의 후진에서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다. 이는 대성당 건물의 훌륭한 음향과 함께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허버트 본 추기경은 대성당 전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1901년 10월 5일에 11명의 소년 성가대원을 위한 성가대 학교를 열었다.[26][27] 1902년 1월, 남성 및 소년으로 구성된 성가대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고,[28] 1903년 대성당이 문을 열면서 성가 미사와 성무일도가 시작된 이래 중단 없이 계속되고 있다.
초대 음악 감독은 다운사이드 학교의 음악 감독이었던 리처드 런시먼 테리였다. 그는 훌륭한 성가대 훈련자이자 학자였으며, 윌리엄 버드, 토마스 탈리스 등 16, 17세기 작곡가들의 작품을 부활시켜 성가대의 명성을 쌓았다.[30] 1924년 테리가 사임한 후, 1901년 최초 성가대원 중 한 명이었던 랜슬롯 롱 신부가 그의 뒤를 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성가대 학교가 폐쇄되고, 음악은 축소된 전문 남성 성악가들에 의해 연주되었다.[31] 전후 조지 맬컴이 성가대의 음악적 명성을 굳혔으며, 특히 빅토리아의 ''어둠의 응답'' 음반으로 유명하다. 이후 프란시스 카메론, 콜린 마비, 스티븐 클리버리, 데이비드 힐, 제임스 오도넬, 마틴 베이커 등이 이 직책을 맡았다. 2021년 5월, 사이먼 존슨이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었다.[33]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성가대는 랄프 본 윌리엄스, 벤자민 브리튼 등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초연하기도 했다. 1907년 첫 음반을 녹음한 이후, 하이페리온 레이블에서 발매된 시리즈를 포함하여 많은 음반을 녹음했으며, 그중 오도넬이 지휘한 마틴과 피체티의 작품은 1998년 그래모폰 어워드에서 올해의 최우수 합창 음반과 올해의 음반을 모두 수상했다.
국내외 콘서트와 여러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에도 자주 방송된다. 헝가리, 독일, 미국 등 국제 투어를 진행했으며, 밀라노와 오슬로 등지에서 공연했다.
2020년 9월, 빈센트 니콜스 추기경은 성가대 유지를 위해 재정 지원을 요청했다.[29]
5. 1. 성가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설립자 허버트 본 추기경은 대성당 전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1901년 10월 5일에 11명의 소년 성가대원을 위한 성가대 학교를 열었다.[26][27] 1902년 1월, 남성 및 소년으로 구성된 성가대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고,[28] 1903년 대성당이 문을 열면서 성가 미사와 성무일도가 시작된 이래 중단 없이 계속되고 있다.초대 음악 감독은 다운사이드 학교의 음악 감독이었던 리처드 런시먼 테리였다. 그는 훌륭한 성가대 훈련자이자 학자였으며, 윌리엄 버드, 토마스 탈리스 등 16, 17세기 작곡가들의 작품을 부활시켜 성가대의 명성을 쌓았다.[30] 1924년 테리가 사임한 후, 1901년 최초 성가대원 중 한 명이었던 랜슬롯 롱 신부가 그의 뒤를 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성가대 학교가 폐쇄되고, 음악은 축소된 전문 남성 성악가들에 의해 연주되었다.[31] 전후 조지 맬컴이 성가대의 음악적 명성을 굳혔으며, 특히 빅토리아의 ''어둠의 응답'' 음반으로 유명하다. 이후 프란시스 카메론, 콜린 마비, 스티븐 클리버리, 데이비드 힐, 제임스 오도넬, 마틴 베이커 등이 이 직책을 맡았다. 2021년 5월, 사이먼 존슨이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었다.[33]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성가대는 랄프 본 윌리엄스, 벤자민 브리튼 등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초연하기도 했다. 1907년 첫 음반을 녹음한 이후, 하이페리온 레이블에서 발매된 시리즈를 포함하여 많은 음반을 녹음했으며, 그중 오도넬이 지휘한 마틴과 피체티의 작품은 1998년 그래모폰 어워드에서 올해의 최우수 합창 음반과 올해의 음반을 모두 수상했다.
국내외 콘서트와 여러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에도 자주 방송된다. 헝가리, 독일, 미국 등 국제 투어를 진행했으며, 밀라노와 오슬로 등지에서 공연했다.
2020년 9월, 빈센트 니콜스 추기경은 성가대 유지를 위해 재정 지원을 요청했다.[29]
5. 2. 오르간
6. 기타
6. 1. ''Oremus'' 잡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1896년부터 월간 잡지를 발행해 왔다. 1996년에 처음 발간된 ''오레무스/Oremusla''(라틴어로 "기도합시다"라는 뜻)는 가톨릭 공동체의 유명 인사들과 비가톨릭 논평가 및 영국 사회 주요 인물들의 기사와 글을 담고 있는 32쪽 분량의 컬러 잡지이다. ''오레무스''는 1896년 1월부터 권당 6펜스에 판매된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기록''(Westminster Cathedral Record), 1907년 1월부터 권당 2펜스 또는 연간 3실링(우편 요금 포함)에 판매된 월간 잡지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연대기''(Westminster Cathedral Chronicle), 1974년에 처음 발간된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게시판''(Westminster Cathedral Bulletin)과 같은 잡지들의 후속 작품이다. 2012년부터 2016년 8월까지 잡지를 편집한 딜런 패리(Dylan Parry)는 2013년에 ''오레무스''를 무료 간행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 잡지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웹사이트를 통해 다운로드할 수도 있다.6. 2. 매장
리처드 챌러너(1691–1781) 런던 교구의 사도 대리 (1946년 대성당에 재안치됨)니컬러스 와이즈먼 (1850년 9월 28일 ~ 1865년 2월 15일) 1850년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가톨릭 계층이 재건된 후 초대 웨스트민스터 대주교. (1907년 대성당에 재안치됨)
헨리 에드워드 매닝 (1865년 5월 16일 ~ 1892년 1월 14일) 웨스트민스터 대주교. (1907년 대성당에 재안치됨)
허버트 본 (1832년 4월 8일 ~ 1903년 6월 19일) 웨스트민스터 대주교. (2005년 대성당에 재안치됨)
아서 힌슬리 (1935년 4월 1일 ~ 1943년 3월 17일) 웨스트민스터 대주교
버나드 그리핀 (1943년 12월 18일 ~ 1956년 8월 19일) 웨스트민스터 대주교
윌리엄 고드프리 (1956년 12월 3일 ~ 1963년 1월 22일) 웨스트민스터 대주교
존 히넌 (1965년 2월 22일 ~ 1975년 11월 7일) 웨스트민스터 대주교
바실 흄 (1976년 2월 9일 ~ 1999년 6월 17일) 웨스트민스터 대주교
코르막 머피-오코너 (2000년 2월 15일 ~ 2009년 4월 3일) (2017년 9월 1일 사망) 웨스트민스터 대주교이자 재임 중 사망한 다른 대주교들과 달리 최초의 명예 대주교
지하실에는 1903년부터 1917년 사망할 때까지 세인트 제임스 궁정 주재 러시아 대사인 알렉산더 백작 알렉산더 콘스탄티노비치 벤켄도르프도 묻혀 있다.
6. 3. 대중문화
로버트 휴 벤슨 몬시뇰의 종말론적 과학 소설 ''세상의 지배자''에서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런던에서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유일한 교회로 묘사된다. 다른 교회들은 모두 국가에 의해 몰수된다.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외교 특파원''에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종탑이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며, 여기서 조엘 매크리가 연기한 기자를 살해하려는 시도가 벌어진다.
셰카르 카푸르의 ''엘리자베스: 골든 에이지''에서 엘 에스코리알에서 일어나는 장면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촬영되었다.

런던 출신의 아일랜드 예술가 브라이언 윌런이 이 대성당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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